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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에 출몰하는 존재의 아픔 - 주선희의 비움의 흔적 전
작성자 : 김수경시계 아이콘작성일 : 2021.03.29

 외국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을 제약받은 반발로 폭동이 일어났다는 소식도 있다. 그래서일까위축된 생활과 경제활동이 보복소비로 나타나 백화점에서는 오히려 매상이 늘어났다고 한다. 새봄 화단에서도 그런 추동력의 시혜를 단단히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각종 기획전시회의 매상이 짭잘한 모양이다.

 

 인사동 역시 평상시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화랑을 찾는 발걸음이 다소 늘어나 있었다. 그러나 예전과 같은 영광(?)을 되찾자면 아직도 시간은 더 많이 필요해 보였다대형전시회에 비하면 무풍지대 같은 인사동의 단체전이나 개인전 중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 있었다.

 

 324일부터 30일까지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작가 주선희가 비움의 흔적이라고 이름한 일련의 연작전도 그중 하나라 하겠다전시실에 들어가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작품은 보는 이의 가슴에 돌 하나를 얹는다허다한 색을 다 버려두고 대형 캔버스를 온통 까맣게 먹물 칠을 한 그것은 분명 모 아니면 도가 될 여지가 충분했기 때문이다그나마 시커먼 바탕에 흙을 연상시키는 색의 옹기들 잔영이 귀신처럼 어른거리는 것이 친절의 전부라면 전부였다. 죽겠다는 것인지 죽이겠다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도발이었다.

 

 


주선희 작가 비움의 흔적전 1.jpg

 

 작가는 장기판에서 외통수 장군을 부르듯이 디밀어 놓은 작품을 이렇게 설명했다.

노자는 도를 검을 현()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검은 바탕은 대자연의 근원이며 그 본질을 형상화 한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검은 바탕에 을씨년스럽게 드러난 옹기의 잔영들은 생성, 소멸하는 존재들의 끝없는 순환을 나타낸 것이라고 했다.

그림에 대한 발상은 부모님의 부재로부터 시작되었어요

 

 

주선희 작가 비움의 흔적전 3.jpg

 

 작고한 부모님의 생멸을 통해 우주적 존재 일반의 숙명적 순환을 생각하고, 그 순조롭지만은 않은 생명 현상들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것이겠다.

지우고 다시 그리는 과정에서 그 모습을 나타내 보았습니다.”

작가의 종교가 무엇이든 간에 불교적 화두와 불교적 세계관이 묻어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작가는 작업을 하는 과정을 통해 생멸하는 존재들의 모습을 재현하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시커먼 화면과 옹기의 잔영만으로 결과 지워진 것 치고는 묵직한 이야기가 있는 셈인데, 팜플렛에 소개된 작가의 노트를 보면 아쉽게도 온통 옹기에 대한 수식뿐이다하긴 공자가 사후세계에 대한 질문에 생도 다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내세냐?”고 대답한 것을 생각하면 검은 바탕에 대한 이야기는 없어도 또 그럴듯 해 보인다하물며 불교에서 선의 세계, 본성의 실체는 말과 글에 담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한 바, 아무 언급이 없어도 시비를 붙이지는 못할 일이다. 더구나 그림을 하는 작가가 문학이나 철학을 한 것도 아니니 표현이 어눌한들 무에 그리 흉이 되리오히려 얼치기로 아는 척하는 것보다는 즐길 줄 아는 것이 더 상급이라 하지 않았던가지우고 다시 그리고, 울화가 솟았다가 혼자 도취해서 즐거워하든지 간에 이 모든 과정도 작품이니 말이다.

 

 

주선희 작가 비움의 흔적전 2.jpg

 

 그러나 그림을 하는 작가들도 물리학이 발달한 요즘에는 사람들이 이 시커먼 세계를 그냥 두지 않는다는것에 관심을 가져보았으면 한다.

노자의 검정()이 오직 시커먼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우주의 암흑물질도 질량이 있고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그 실체가 간접적으로나마 인식의 세계로 들어오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런 것을 어찌 요령부득한 과학에게만 맡겨둘 수 있을까수학이나 인식론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은 화가들의 운동장일 수도 있다일찍이 참선의 선문답처럼 색과 형상을 활용하여 한방씩 먹이고 있는 것이 그림이기 때문이다. 주선희 작가는 이런 것을 붙잡아 보려고 한 것은 아닐까?

 

 모든 부정적인 것을 감안하고도 이 작가의 작품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정작 작가 자신은 알았던 몰랐던 간에 이 그림은 앞서간 누구를 강력하게 연상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가장 순수한 러시아 미술양식인 절대주의(Suprematism)와 그 대표적 주자였던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1878~1935). 미술역사상 상징적인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가장 과감하게 비약시켰던 사람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1913~1915년 사이 발표된 그의 검정색 사각형은 캔버스 가장자리의 좁은 여백을 남기고 나머지 전체를 까맣게 칠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미술계에 준 충격은 대단했다당시까지 지배적이던 서양 회화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사멸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평론가들은 서양에 대한 동양의 승리,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 물질에 대한 정신의 승리라고 격찬했다. 그의 절대주의는 시간과 공간 개념속에 구축된 하나의 철학적인 의미를 지닌 색체체계라는 평가도 가해졌다단지 검정색 표면이 가장자리의 여백 속에 한정되지 말고 전체까지 연장되었더라면 테마에 맞게 우주의 무한성을 나타내는데 유감이 없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었다.

(H.W.잰슨 & A.F. 잰슨 공저한 서양미술사 참고: 옮긴이 최기득, 2001년 미진사 발행 )

 

 작가 주선희의 검은 공간을 보면서 카지미르 말레비치를 연상한 것은 지나치게 나간 것일까? 단순하게 두 가지 이하의 표현 수단을 갖고 평면 위에 이미지를 고착시킨 시도 또한 그의 작품을 연상시킨다물론 주선희 작가의 작품과 자기 변에는 결과론적으로 만족하지 못할 부분도 많다. 또한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나 연작물을 더 보지 못한 상황에서 꿈보다 해몽이 찬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은 앞으로 작가에게 맡겨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작가가 아직 살아있고 그의 작업실에서 끊임없이 이 테마를 놓고 고민하는 한, 진일보한 작품이 우리를 놀라게 할 날도 기약할 수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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